평소 알고 있었던 방언통역과 방언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보아야 하고, 책 속에서 반드시 생각이 바뀌어져야 하는 소중한 책이다. 가볍게 접한 방언통역과 방언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으로 접근한 만남이었지만, 진정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 극명하게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충격적인 만남이었다.

먼저 “방언” 자체가 늘 하던 방언기도와 다름을 알고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성경 상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되었고, 책을 통해 성경 보는 법을 조금씩 깨달아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희미하게나마 알아 가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전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이다. 방언에 대한 생각, 방언통역에 대한 성경적인 생각들이 완전히 무너졌고, 성경으로 해석한 이 말이 맞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주신 모든 말씀이 하늘나라 방언이라는 것과 그 방언의 뜻을 드러내어 복음으로 바꾸어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 방언통역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필자도 오직 그것만을 강조하며, 얼마나 중요한가를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음으로 역설하고 있다. 오히려 오해할까 더욱 자세히 성경말씀으로 변증하고 확증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수많은 지도자들과 잘못 알아온 기독교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명확하게 전함을 알 수 있다.

이미 알고 있고,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닌 말씀 속에서 말씀을 해석하고, 원어풀이를 통해 더욱 이해를 돕는 성경을 더욱 성경답게 이해시키려는 필자의 노력 속에서, 독자들을 위해 수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 일일이 찾고 연구하여, 조금이라도 더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고, 보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되기를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말씀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 영혼이 거듭나고 진리에 거하기를 소망한다.

방언통역과 방언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바로 알기 원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흔히 알고 있는 잘못된 성경 상식을 파괴하고 성령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고침을 물론, 은사와 방언, 성령받는 법 등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성경적인 해석을 통해 온전하게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표가 될 것이다. 깊이 박혀있는 방언을 시원하게 변증하여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면서도 진리 안에 거하는 바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니, 곧 방언통역과 방언에 대한 이해이다.

올바른 방언통역만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기록된 구절을 통해 일일이 변증하며, 낱낱이 기록하였으니 유의해서 보면 분명히 사랑의 마음으로 책을 기록한 필자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본다.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본능적인 생각이 있다. 이 본능적인 생각이 얼마나 스스로의 영혼을 죽이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소문과 풍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이 책을 통해 방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성경을 통해 드러내는 하나님의 생각을 자연 만물 속에도 얼마나 감춰 두셨는지 깨닫고 알아가게 된다(롬 1:20).

본문의 내용은 주로 고린도전서 12-14장과 사도행전 2장과 19장을 소제목으로 구성하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성경 전체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을 통틀어 통으로 변증하고 있고, 원어와 성경본문 자체를 수록함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한껏 돕는 배려를 엿볼 수 있다. 때문에, 추천의 글에도 밝혔듯이 목회사역자와 신학생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만큼 방대한 자료와 충분히 알 수 있게 변증된 성경내용들로 가득 차있어 교재로 채택될 만한 내용임을 말한다.

주 핵심인 말의 뜻을 풀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는데 중점을 두어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과 방언통역이 기존의 알고 있던 상식과 얼마나 다르고,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개인적인 생각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정석을 보여주고 있어 성경을 통해 말하는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과 얼마나 다른지 또한 보여준다.

결국, 현 교계를 비판 혹은 질타하는 내용처럼 보여지는 부분도 종종 있지만, 잘못을 바로 깨달아 알기를 바라는 필자의 정성어린 사랑의 표현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방언통역과 방언을 통해 깊은 영적 잠을 자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바, 오직 말씀을 통해 깨닫고 진리 안에 거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 필자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 한권의 책이 주는 엄청난 뜻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진리로 돌이키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아닐런지..

목차

첫째. ‘방언’에 대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방언’은 곧 ‘그 나라 말’을 뜻한다

둘째. 고린도전서 14장에 ‘방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1)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다

2) ‘방언’은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3)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나

4)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마음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방언’으로 하면 너희를 미쳤다하지 않겠느냐

6) 일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다섯 마디가 낫다

7) ‘방언’을 통역하는 방법은?

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해야 한다

9) 그러나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고린도전서 14장에 대한 결론

(1) 개인적인 은사로 주신 방언에 대한 정의

(2) ‘방언’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

(3) ‘방언 통역’에 대한 성경적인 정의

셋째. 고린도전서 12장에 기록된

‘각종 방언과 방언들 통역함’에 대한 정의는?

‘각종 방언과 방언들 통역함’에 대한 결론

넷째.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된 ‘사람의 방언’에 대한 정의는?

1) ‘사람의 방언’은 무엇을 뜻하는가?

2) ‘그치는 방언’은 무엇을 뜻하는가?

다섯째. 사도행전에 기록된 ‘방언’은?

1) 오순절 날 역사하셨던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2) 오순절 날 ‘성령’이 오신 목적

3)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는 방언에 대한 정의

4) 사도행전 19장에 등장하는 ‘방언’에 대한 정의

여섯째. ‘방언’이 온전해지려면 다시 예언해야 한다

발췌

이 시대는 말의 홍수 속에 사는 시대라고 할 만큼 모든 문제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다. 이러한 말의 홍수 속에서 방언에 대한 말 또한 수많은 해답의 말들을 하고 듣고 그대로 믿어왔었다. 흔히 지금까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방언은 우리의 혀를 통하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아닌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 그것도 기도하다가 아니면 목회자를 통하여 안수받을 때 받는 ‘은사’라고 생각해왔고 믿어왔었다. 필자 역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하고 1~2년 되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나 스스로 체험하는 길은 ‘방언 은사’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금식기도원에서 금식하던 중 금요일 밤 철야예배 때 목사님께 안수를 받으면 방언 은사를 받을 것 같아 안수를 받게 되었다. 그때 그 목사님께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시면서 ‘할렐루야’라는 말을 계속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안수기도가 끝나도 방언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매님, 이미 방언 은사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굴에 들어가서 기도하세요.’ 라는 말씀을 하기에 의아해하면서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왔는데 헛걸음 할 수 없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방언 은사를 받고 가야겠다는 의지로 기도굴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순간 ‘혀’가 돌아가 이상한 말을 하게 되면서 이것이 바로 방언의 은사구나 생각했고 그 순간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구나’라는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다. 당시 기쁨을 표현하자면 길가에 있는 풀잎까지도 필자를 축하해주는 것같이 보였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을 필자 혼자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방언으로 하는 그 기도가 무슨 기도인지 저 자신이 스스로 깨달을 수 없었으나 그래도 필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의 확신이 생겼다고 확신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불신자 세상으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고 사명자로서 길을 가고 있다.
p.24 첫째 ‘방언’에 대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고전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 하는 것으로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알아듣는 자가 없으며, 이는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 하였다. 문제는 이 말씀 때문에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에 대한 동경심을 갖는 반면, 방언을 받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심한 열등감마저 들게 만든다. 심지어 방언에 대한 열풍이라고 할 만큼 바람이 일어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그럼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바로 위 본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한 점이 핵심적인 이유이다. 이제 위 본문에 대한 정경적인 해석을 해 보고 말 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냄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사람의 생각대로 방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성경적인 사고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이로 미루어 보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받은 은사라고 하는 방언은 우리 자신들도 무슨 기도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라는 사실이 분명한 해답이다.
p.52 (2) ‘방언’은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

고전 14:27~28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본문 또한 문자 그대로만 보면 도무지 잘 해석할 수 없는 말씀이다. 그래서 더욱 방언을 말하면 알아듣는 자가 없다는 말이 확실한 해답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표적(표징)으로 주신 방언의 은사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자신이나 남이 알아들을 수 없으며, 성경의 문자적인 기록은 하늘나라 방언(하늘나라 말)으로서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누가 방언을 말하거든 즉, 성경을 문자 그대로만 보고 전하려면 반드시 통역(말의 뜻을 드러내는 것)을 하되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통역하라고 하신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본문을 다시 문자 그대로 말하면, 오늘날 강단에서 설교를 할 때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말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말이 아니지 않은가? 아니면 개인적인 표적으로 주신 방언 기도를 할 때 이렇게 통역하라는 말인가?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분별해보도록 하자.
p. 129 둘째. 고전 14장에 ‘방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